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건적의 난 (문단 편집) === 대흥산 전투(#) === ||<-3> {{{+1 '''대흥산 전투[br]大興山戰鬪'''}}} || || '''시기''' ||<-2>184년 || || '''장소''' ||<-2>{{{#!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include(틀:지도, 장소=涿州市&zoom=4, 타입=satellite, 너비=100%, 높이=150)]}}} ---- [[바오딩시|{{{#!wiki style="padding: 2px 10px; border-radius: 5px; background: #aa1111; color: #ece5b6" '''대흥산'''}}}]] {{{-2 ([[한나라]] [[삼국지/지명/유주|유주자사부]] [[삼국지/지명/유주#s-3|탁군]] 대흥산)}}} || || '''원인''' ||<-2>황건적의 유주 침공 || || '''교전 세력''' || [[유언|{{{#black,#white '''유언군'''}}}]][br]{{{-2 (진압군)}}}[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3px; margin-right: 3px; background: red; font-size: 1.2em" {{{#white '''승'''}}}}}} || '''[[황건적|{{{#black,#white 황건적}}}]]'''[br]{{{-2 (반란군)}}}[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3px; margin-right: 3px; background: blue; font-size: 1.2em" {{{#white '''패'''}}}}}} || || '''지휘관''' || 교위 [[추정(후한)|추정]] || [[정원지]]† || || '''장수''' ||<^|1>[[유비]] [br] [[관우]] [br] [[장비]] ||<^|1>[[등무]]† || || '''병력''' || 5백명 || 5만명 || || '''피해''' || 피해 규모 불명 || 피해 규모 불명 || || '''결과''' ||<-2>유언군의 승리 및 황건적군 지휘관 전사 || 황건적과 유주자사 유언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또한 유비 삼형제의 첫 전투이자 첫 승리이기도 하다.[* 단 《삼국지연의》의 기준이다.] 184년, 황건적 장수 정원지는 5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유주 탁군을 침략했다. 유주자사 유언은 유비에게 500명의 군사를 주면서 저들을 막으라 명령했고 유비는 겨우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50,000명의 황건적과 싸워야 했다. 유비는 대흥산 아래에서 황건적과 대치했고 유비는 적장 정원지에게 소리쳤다. “나라를 배반한 역적놈아! 어찌 어서 항복하지 않냐!” 이 말을 들은 정원지는 부장 등무를 출진시켰고 장비 또한 [[장팔사모]]를 들고 돌격하였다. 등무는 장비를 찌르기도 전에 장비의 장팔사모에 명치를 찔려 몸이 뒤집히며 말에서 낙마했다. 등무가 장비에게 손쉽게 당하자 대장 정원지가 칼을 들어 장비를 향해 말을 몰면서 칼을 휘두르며 돌격했다. 그러자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정원지를 맞이했다. 정원지는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관우를 보고 미쳐 대처하지 못했고 관우는 청룡언월도로 정원지를 두동강 내버렸다. 대장 정원지가 베이자 남은 황건적들은 창을 거꾸로 들어 달아났고 유비가 이들을 추격하자 이들에게 투항하는 황건적의 수가 헤아릴 수 없었다. 유비가 황건적을 격퇴하고 성으로 돌아오자 유주자사 유언은 이들을 직접 맞이해 군사들에게 음식을 주며 감사를 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